누가 나에게 언제부터 하나님을 믿었냐고 하는 질문이 나에겐 참 어렵다.
일단, 나는 모태신앙은 아니다.
처음 교회를 간 것은 초등학교 1학년때 친구를 따라갔던 여름성경학교였다.
거기서 인형극을 보았는데, 어린이들 몇명이 나오고 어떤 아이는 아주 착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의 법을 잘 따르며 착하게 살다가 죽었는데 결국 지옥에 갔다.
어떤 아이는 착하게 살았고 하나님도 믿었지만 다른 친구에게 전도를 하지 않아서 지옥에갔나? 아무튼 좋은 결말은 아니었다.
아무튼 지금생각해도 애들에게 보여주기에는 과하다 싶은 내용의 인형극을 보고 나름 어린 마음에 충격과 공포를 경험하고 기독교는 아주 부조리하고 무서운 곳이라는 선입견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몇년 뒤에 성당을 다녔지만 부모가 신자가 아니면 세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하고 교회고 성당이고 다들 형식만 중요시할뿐 진짜 믿는 게 아니야 라는 당돌한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지않는 건 아니지만 어떤 공동체도 들어가지 않고 그냥 혼자 믿을래 이러면서 살았다.
그러다 반백이 다 되어가는 나이가 되어서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콜링에 응답을 하게 되고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나의 오만방자함과 자만과 어리석음을 얼마나 많이 깨닫게 되었는지 모른다.
꾸준히 교회안에서 신앙을 키워왔으면 다른 사람을 양육할 위치에 있을 나이인데 여전히 모르는 것도 많은 초보자이다.
또한 평생을 교회밖에서 성경 한 번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이 공동체안에서 쓰는 많은 용어들부터 낯설기 그지 없었다. 외국에 가면 외국어를 배우듯이 처음에는 아이처럼 뻔하고 쉬운 질문들을 해야했다. 가만히 있으면 다들 아는 내용이라, 게다가 나는 나이도 많으니 누가 섣불리 가르쳐주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그저 얼굴에 철판깔고 물어보거나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해야했다. 그런데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이 각종 이단이나 여러 이유로 오염된 내용이 많다고 하니 함부로 찾아보지 말고 물어보라는 얘기를 듣고는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 공간도 인터넷 공간이지만, 혹시 나와같은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그리고 나 스스로도 정리를 해볼까 싶어 몇가지 용어를 정리해볼까한다.
영육간에 강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정말 정말 많이 쓰는 말인데, 처음에는 그냥 말 그대로 영과 육 즉, 영혼과 육체가 모두 강건=건강 하기를 기도한다는 뜻인줄 알았다. 또 나의 잘난척이 튀어나와서 한동안에 굳이 저렇게 말하지 않고 "몸과 영혼이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라는 식으로 믿지않는 사람들이 쓰는 말과 최대한 비슷하게 쓰고 다녔다. 그런데 조금 뒤에 알게되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은 영혼과 같은 뜻이 아니었다. 내 안에 받아들인 성령이 지배하는 영, 성령으로 인해 깨어나는 그 영은 단지 누구나 말하는 영혼과는 다른 뜻이었다. 또한, 강건하라는 말은 그냥 건강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께 단단히 붙어있으라는 뜻이었다. 즉, 성령에 의해 깨어나는, 다시 살아나는 나의 영이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계속 단단히 붙어있어 계속 깨어있으라는 뜻이며, 육적인 것 역시 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 가는데 몸 간다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내 몸도 같이 붙어있으라는 뜻이었다. 그냥 몸과 마음이 건강하세요~ 이런 뜻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뜻을 알게 되니 대체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고 저 말이 얼마나 많은 축복과 도전과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인지 그 말의 무게에 대해서 더 느끼게 되었다.
전신갑주를 입으라
전신갑주가 뭔가요?라고 물었을때 온 몸을 감싸는 갑옷이라고 들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앞에 가면을 써봤자 그것은 가증스러운 거짓일 뿐이고 정직해야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전신갑주는 나를 감싸는 갑옷 같은 것이다. 이것은 남들이 하나님 믿는 나를 핍박하거나 욕할때 나를 보호하고 감싸주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내가 타인에게 행할 수 있는 나쁜 영향을 막아주기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가고 그 행동을 닮아가기 위해서 마음 깊은 곳은 미워하는 사람 앞에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 전에 진실함이라는 이유로 증오를 그대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은 할 수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몸에 두르고 사랑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구역모임을 이르는 여러가지 말들
구역모임은 교회 내에서 가지는 소모임이다.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예배가 하향식이라면 구역예배는 상향식이다. 목사님의 설교가 듣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라면 구역예배에서의 나눔은 깨달음을 적용하는 연습이다. 믿음이 자랄려면 듣고 이해만 해서는 안되고 내 삶에 적용하고 행동으로 실천에 옮겨야한다. 그 역할을 구역예배에서한다. 이 구역을 이르는 말이 교회마다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처음 경험했던 곳에서는 셀=cell이라고 했다. 셀예배. 그래서 구역장을 셀장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cell은 세포의 그 셀이다. 자꾸자꾸 세포분열을 해서 늘어나고, 커다란 유기체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라는 의미에서 셀이라고 들었다. 첫정이라 그런지 정말 혀에 착 감기고 그 뜻도 너무나 맞는 것 같다. 어떤 교회에서는 순이라고 한다. 나무에서 새로운 싹이 나는 것, 그 순을 뜻한다. 그리고 지금 교회에서는 목장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리고 이 목장을 이끄는 리더는 목자라고 한다. 목자의 이끌림을 따라가는 양이 된 기분이라 기분이 몽글몽글 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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