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약
목사님께서 설교를 통해 1~12절까지는 부부간의 섬김에 대해서 13절~16절까지는 어린아이, 즉 자녀에 대한 섬김으로 설명해주시고 가정을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설명해주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혼에 대해서 물은 이유는 이들이 예수님의 지혜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헤롯왕이 헤로디아를 취한 일에 대해 예수님의 대답을 물음으로써 함정에 빠뜨리려 한 까닭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분명하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지적하셨다. 또한, 어린아이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은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만이 천국에 살 수 있다고 하신다.
붙잡은 말씀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느낌과 묵상
어렸을 때 달에 사는 토끼 이야기를 믿고 내가 마음대로 지어낸 달토끼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바른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던 순수했던 큰 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 내가 믿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나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알려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이미 그 시절은 지나갔다.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고 싶고, 잘되면 내가 더 기쁜 자식이기에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행복하게 꽃길만 걸었으면 싶은 것이 나의 욕심이지만 고난 없는 인생이 없다는 것도 안다. 이 아이를 공부시키느니 차라리 내가 수능을 다시 보고 말지 하는 쉰소리를 쉽게 했지만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이 이 아이의 신앙도 내가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다. 고난과 행복이 번갈아가면서 오는 인생길에서 고난 속에서도 평안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그것을 쉽게 전할 수 있는 어린아이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이 아이가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님의 자녀로 나아가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고난 속에서 절망하거나, 쉽게 얻은 성공에 자만하다 실족하는 순간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지지해주며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이제는 기도할 수 있어 감사하다. 작년 여름 아이가 우울증으로 매일 밤 몇 시간씩 우는 것을 보면서도 긍휼의 마음보다는 대체 쟤는 왜 저러는 거야 하며 짜증이 먼저 솟구쳤던 나의 부족함, 아이의 힘든 마음보다는 답답하고 속상한 내 감정에 더 치중했던 나의 이기심을 기억한다. 그런 엄마였던 내가 하나님이 주신 위로를 받고 사랑을 느끼자 아이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었다. 이후 놀라울 만큼 안정이 되어 가는 아이를 보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또 생길 수 있음을 안다. 완전한 사랑, 완전한 이해를 바라는 인간의 기대는 엄마라 할지라도 채워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채워줄 수 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을 안아 무릎에 앉히신 것처럼, 아직 자라지 못하고 생명의 물을 마시지 못해 목마른 영혼인 나의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축복하고 싶다. 나의 영과 아이의 영이 만나 하나님 품 안에서 하나 되는 행복을 누리고 싶다. 늘 아이들에게 밀려 뒷전인 남편의 마음속에도 순수한 어린아이가 있을 것이다. 그 아이에게도 손을 내밀어 축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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